유달정보-(주)유미디어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민속자료 | 목포시립도서관

본문

목포시립도서관

분류 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민속자료

주소 전남 목포시 대의동2가 1-5

연락처

홈페이지 http://tour.mokpo.go.kr/

  • 소개
  • 이용안내
  • 찾아오시는길
  • 참고자료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일본은 영사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조선정부로부터 만호청(1895년 폐진된 목포진)을 빌려 사용하였고, 유달산 고지대에 가건물을 지어 이관하였으며, 다시 현재의 위치인 대의동에 일본영사관과 부대시설인 경찰서·우편국 등을 함께 마련하였다. 당초 일본영사는 무안감리에게 일본영사관 부지 16,028평방미터를 요청하였으나, 이신청을 접수한 조선정부는 9,483평방미터만을 승인하였다.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한 것으로 일본인들의 기록이 전해온다. 이후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사용되었고, 광복이후 1947년부터 목포시청, 1974년부터는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1990년 1월부터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특징]

개항 당시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높이 13.65m, 연면적 597.68m²로서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면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형은 장방형의 2층 구조에 붉은 벽돌과 흰색 벽돌을 사용하였고, 좌우대칭으로 전면은 정연하게 배치되어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현관은 목재로 입구를 돌출 시켜 만들었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대부분 이러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 창문은 타원형에 차이를 틀어 오르내림창으로 만들었다. 또한 건물의 내부에는 각 실마다 벽난로를 설치하여 모두 9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2층의 두 곳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중 1기는 최고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눈길을 끄는데, 그 당시에는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는 고가품이었다고 한다.

건물의 내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변형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천정의 문양이나 띠둘림 등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외형은 백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견고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시청으로 사용하던 시절에 건물의 주변에 설치한 부속건물들과의 연결 통로를 만들기 위해 벽돌을 헐었다가 다시 복원해놓은 흔적들이 건물의 원래 벽돌과 조금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6.25당시 공중폭격으로 인해 건물의 외부가 조금 손상된 모습이 눈에 띤다. 목포문화원에는 당시 건물 벽돌에 박혀 있던 탄환4기를 보존하고 있다.

일본영사관 건물은 옛 관청건물이 지니는 위풍당당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의 선창가 쪽을 바라보면 동척 건물을 비롯하여 구 일본인 조차지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반대로 조차지 지역에서 바라보면 약간의 언덕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이 건물의 외형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매우 위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부속 건물로는 현재 서예실과 음악실로 쓰고 있는 별관 1채가 남아있다.

[의의]

목포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개항되어 성장한 근대도시이자, 일제강점기 한국수탈의 기점 역할을 했던 눈물의 도시이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립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용했던 것도 아니지만, 우리역사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으로써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목포의 문화재중 유일하게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방이후 목포시청으로 오래동안 사용되면서 목포가 행정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중심역할을 이 건물이 수행하였으며,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어 목포시민과도 매우 친숙한 건물이 되었다.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근대건축기법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이 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남아 있는 과거의 일본관련 유산들에 어떻게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여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관심사이다.

[관련일화]

한동안 이 건물은 러시아공사관으로 알려져 있었고, 좀 자세히 아는 분들의 경우 원래는 러시아가 사용하려고 지었는데 나중에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이 건물을 차지하여 사용했다는 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이 건물의 외양이 서구식이라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 동안 이 건물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있었다. 하지만 현재로서 목포문화원은 이 건물이 처음부터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축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선 건물의 중심부 상단에 일본국화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던 점과 양측 벽면의 상단에 일장기 모형의 벽돌배치, 건물 내부 벽난로에 새겨진 벚꽃문양 등이 그 물적 증거이다. 또 1990년 본 건물 옥내 전기배선공사와 1992년 천정 및 마루장 보수시 [韓國木浦日本領事館建築場長谷川方行]이라 표시된 여러개의 장목이 발견되어 일본인의 지휘하에 일본영사관 건물로 지어졌음을 뒤받침하고 되었는데, 확인 결과 현재 이 건물의 내부에 사용되고 있는 목재들에도 이와같은 글씨가 써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의 기록이긴 하지만 『목포지(1910년 발행)』라는 책에도 그들이 건축하였던 것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순수 일본인들의 기술에 의해 지어졌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일제시대 목포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원로분은 마지막 부윤이였던 일본인 가와노 군조가 "러시아의 건축기술에 대해 극찬을 하였다"는 것과 일제시대 사용했던 러시아제 대형 벽시계와 사무비품 등이 1960년대 초 김학중 시장 때까지만 하여도 전해왔다고 증언했다.  

회사명: 유달정보신문 (주)유-미디어| 사업자 등록번호 : 411-81-33942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23-전남 목포 0186호
대표 : 박창경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박준혁 | 주소 : 전라남도 목포시 비파로 61 4층 (상동) (우: 58690)
대표전화 : 061-279-8001 | 팩스 : 061-283-5118

Copyright ⓒ 유달정보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