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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강성서원(江城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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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서원(江城書院)

분류 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주소 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 산365-1,677-2

연락처 전라남도 장흥군 문화관광과 061-863-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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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원은 삼우당(三友堂) 문익점(文益漸)과 풍암 문위세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옛 이름은 월천사(月川祠)였다. 원래는 임진왜란 때 창의한 문위세(文緯世)를 향사하기 위해 인조 22년(1644) 월천사를 세운 것에서 비롯된다. 숙종 28년(1702) 사우로서의 건립절차와 규모를 새로 마련하였고 영조 10년(1734)에는 문익점을 추배하면서 그를 주벽으로 하고 문위세(文緯世)를 배향케 되었다. 정조 9년(1785)에는 전라도 유생 600여 명이 이들의 공덕을 흠모하여 사액할 것을 청하는 청액소를 올리게 되자 이에 조정으로부터 「강성」이라는 액호를 받았다. 그 후 고종 5년(1868) 훼철되어 고종 31년(1894) 후손 문정원·문욱호 등에 의해 설단하였다가 1905년에 강당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1929년에는 신실(숭덕사)를 중건하였다. 문익점(1329∼1398년)은 진주 강성현 출신으로 자를 일신, 호를 삼우당이라 하였다. 공민왕 9년(1360)에 문과에 급제하여 1363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들어 갔다가 3년후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대 속에 감추어 옮으로써 우리나라의 의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공은 우왕 1년(1375) 전의주부, 고려 공양왕 1년(1389) 좌사의대부가 되었고, 이성계 일파가 추진한 개혁에 반대했다가 조준의 탄핵을 받아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세조때 사당이 세워졌고 시호를 충선이라 하였다. 문위세(1534∼1600년)는 문익점의 9대 손으로 자는 숙장, 호는 풍암이다. 명종 22년(1567)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보다는 오직 학문 연구에만 전심을 기울였다. 임진왜란 때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량 조달 등으로 공을 세워 선조 28년(1595) 용담현령에 임명되었다. 또한 정유재란 때는 읍민을 동원하여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많은 왜적을 무찔러 선조 33년(1600)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 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산실인 숭덕사는 전면 반칸을 툇간으로 개방하였다. 양박공면에는 바람막이판을 설치하였고 처마는 겹처마로 꾸몄다. 가구는 1고주 5량가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강당이 있으며 내·외삼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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