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영석재(永錫齋)
관련링크
- 소개
- 이용안내
- 찾아오시는길
- 참고자료
청강 이승(1556∼1628)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건물로, 약 300여년 전 인천 이씨 후손들이 주체가 되어 지금 있는 자리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건물은 강당, 사당, 내삼문, 문간채,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석재’라고 부르는 강당은 중앙에 있으며 사당은 별도로 담에 둘러싸여 있다. 강당 앞쪽으로 문간채가 있고 관리사와 창고는 오른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12년 새로 지은 것이다. 이승 선생을 중심으로 9인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은 1962년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건물은 강당, 사당, 내삼문, 문간채,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석재’라고 부르는 강당은 중앙에 있으며 사당은 별도로 담에 둘러싸여 있다. 강당 앞쪽으로 문간채가 있고 관리사와 창고는 오른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12년 새로 지은 것이다. 이승 선생을 중심으로 9인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은 1962년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영석재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약 300여 년 전 청강(淸江) 이승(李昇)(1556∼1628년)을 추모하기 위하여 인천이씨 후손들이 주체가 되어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이승을 주벽으로 9인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있는데 이 사우는 1917년 설단하여 제향해 오다가 1962년에 건립된 것이며, 영석재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은 후손 이정원이 191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중수한 것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 강당, 내삼문, 문간채 그리고 관리사 등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부지의 중앙에 강당을 앉히고 사당은 왼쪽 높은 곳에 강당쪽을 향하여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하고 그 중앙에 배치하였다. 강당 전면으로는 강당 중심측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문간채를 건립하였고 관리사와 창고는 맨 오른쪽 아래편에 배치하였다. 강당인 영석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평면 중앙에는 전후로 반칸씩 툇마루를 설치하고 중앙으로는 온돌방을 드렸으며 양측으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구조는 막돌초석 위에 원형기둥(중앙 방 주위는 사각기둥)을 세운 2고주 7량가로 도리는 장혀받침을 둔 8각단면 도리를 사용하였다. 공포는 주두를 놓고 도리방향으로 첨차를 보낸 2익공식으로 쇠서의 끝은 몹시 날카롭다.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반의 맞배집으로 전면 반칸은 툇간으로 개방하였다. 양박 공면에는 바람막이 판을 달았고 처마는 홑처마로 꾸몄다. 기단은 지형 관계상 높게 막돌 허튼층 쌓기 형식으로 전면이 축조되었고 주춧돌은 퇴주밑에만 원형 주춧돌을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방형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 위에는 공포 구성없이 주두를 얹고 창방을 걸었으며 창방위로는 일정 간격으로 소로를 배치하였다. 가구는 퇴주와 후면 평주 사이에 대량을 바로 걸은 5량가이며, 도리는 장혀받침을 둔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천장은 영등천장이며 내부바닥은 우물마루로 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