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강진사문안석조상(康津寺門안石彫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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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동마을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높이 122㎝의 석상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큼지막한 둥근받침 위로 4각의 석상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둥근받침은 네 조각의 돌이 이어 있으며 가운데가 4각으로 파여 그 곳에 석상을 고정시켜 놓았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석상은 앞면과 양 옆면을 약간 다듬었을 뿐 뒷면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받침은 윗면에 8판의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석상에는 앞과 옆면에 13개의 다양한 상들을 조각하였다. 머리에 뿔이 있거나, 강하게 부각시킨 이목구비, 방망이를 든 도깨비 등 주로 도깨비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치는 얼굴 형상이다.
원래 사문안이라는 마을 앞 야산에 있던 것을 194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것으로, 사문안은 사찰지역이라는 의미이다. 석상의 기능이 불교적 요소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되며 또한 도깨비에 대한 민간신앙 요소와도 복합되어 있어 두 문화의 결합을 보이는 흥미로운 유형물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큼지막한 둥근받침 위로 4각의 석상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둥근받침은 네 조각의 돌이 이어 있으며 가운데가 4각으로 파여 그 곳에 석상을 고정시켜 놓았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석상은 앞면과 양 옆면을 약간 다듬었을 뿐 뒷면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받침은 윗면에 8판의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석상에는 앞과 옆면에 13개의 다양한 상들을 조각하였다. 머리에 뿔이 있거나, 강하게 부각시킨 이목구비, 방망이를 든 도깨비 등 주로 도깨비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치는 얼굴 형상이다.
원래 사문안이라는 마을 앞 야산에 있던 것을 194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것으로, 사문안은 사찰지역이라는 의미이다. 석상의 기능이 불교적 요소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되며 또한 도깨비에 대한 민간신앙 요소와도 복합되어 있어 두 문화의 결합을 보이는 흥미로운 유형물이라 할 수 있다.
석상(石像)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상후하박형이다. 전체 높이 122cm, 너비 55cm, 두께 28cm의 자연석으로 만들었고 앞면과 좌우면이 약간 다듬어졌을 뿐 후면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한편 대좌(臺座)는 지름 155cm의 원형 판석으로 4조각으로 깨어진 판석들이 이어져 있는 상태이다. 가운데가 사각으로 파여 있고 그 파인 곳에 석상을 끼워 고정하고 있다. 석상을 만든 돌의 색상은 연갈색을 약간 띠우고 있는 반면에 대좌는 전체적으로 검고 흰 색조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짙은 회색을 띠고 있다. 대좌의 윗면에는 8판(辦)의 연꽃무늬가 음각되어 있다. 한편 석상에는 앞면과 좌·우면에 13개의 상들이 음각되어 있다.
석상이 놓인 과거의 위치와 석상의 형상을 볼때 이 석상의 기능에 관해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첫째 "사문(寺門) 안" 구역의 경계 표식 기능을 추론할 수 있다. 둘째 석상에 형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석상은 단순히 경계 표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능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즉, 석상의 수많은 귀면들은 액을 막아주고 벽사(벽邪)의 기능을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전체의 상들을 볼때 우선 귀면들이 지배적임을 지적할 수 있다. 뿔이 나타나지 않은 얼굴들도 대개 눈, 볼, 입, 코 등을 강하게 부각시킨 형상이 귀면을 연상시킨다.
왼쪽 면 입상의 다리들이 상당히 야위어 있어 도깨비 다리 모습을 연상시키며, 왼손으로 물건을 잡아 어깨에 걸쳐 멘듯한 형상도 방망이를 든 도깨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왼쪽의 비스듬한 곳에 있는 좌상(坐像)은 승려의 모습에 가깝다. 또한 석상의 대좌에 8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석상은 도깨비에 대한 민간신앙 요소들과 불교적인 요소들이 복합된 유형물이라 말할 수 있다. 제작 주체가 "사문 안" 구역을 관장하던 사찰이었는지, 사문(寺門) 안 구역의 일반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문화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민간 신앙적인 요소들과 불교적 요소들이 복합된 유형물로서 두 문화의 결합현상을 나타낸다고 판단된다.
석상이 놓인 과거의 위치와 석상의 형상을 볼때 이 석상의 기능에 관해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첫째 "사문(寺門) 안" 구역의 경계 표식 기능을 추론할 수 있다. 둘째 석상에 형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석상은 단순히 경계 표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능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즉, 석상의 수많은 귀면들은 액을 막아주고 벽사(벽邪)의 기능을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전체의 상들을 볼때 우선 귀면들이 지배적임을 지적할 수 있다. 뿔이 나타나지 않은 얼굴들도 대개 눈, 볼, 입, 코 등을 강하게 부각시킨 형상이 귀면을 연상시킨다.
왼쪽 면 입상의 다리들이 상당히 야위어 있어 도깨비 다리 모습을 연상시키며, 왼손으로 물건을 잡아 어깨에 걸쳐 멘듯한 형상도 방망이를 든 도깨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왼쪽의 비스듬한 곳에 있는 좌상(坐像)은 승려의 모습에 가깝다. 또한 석상의 대좌에 8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석상은 도깨비에 대한 민간신앙 요소들과 불교적인 요소들이 복합된 유형물이라 말할 수 있다. 제작 주체가 "사문 안" 구역을 관장하던 사찰이었는지, 사문(寺門) 안 구역의 일반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문화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민간 신앙적인 요소들과 불교적 요소들이 복합된 유형물로서 두 문화의 결합현상을 나타낸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