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영암옥야리고분군(靈岩沃野里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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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야리 상촌 마을의 북쪽에 동서로 뻗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구릉에 있는 무덤들로, 남해포로 가는 옛도로 양쪽에 분포한다.
모두 28기인데 4기의 독무덤(옹관묘)과 후대의 무덤 2기, 그리고 1개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긴 타원형이고, 영산강 유역 독무덤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이 둘러져 있다. 14호 무덤은 흙을 파고 하나의 독무덤을 안치한 후, 봉토를 쌓은 단독장으로 소형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암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28기인데 4기의 독무덤(옹관묘)과 후대의 무덤 2기, 그리고 1개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긴 타원형이고, 영산강 유역 독무덤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이 둘러져 있다. 14호 무덤은 흙을 파고 하나의 독무덤을 안치한 후, 봉토를 쌓은 단독장으로 소형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암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종면 소재지인 내동리(內洞里)에서 서북쪽으로 약 2.9㎞ 쯤 가면 옥야리(沃野里) 상촌(上村)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북편에 동서로 뻗어있는 구릉이 마을을 감싸 돌고 있으며 고분군은 남해포(南海浦)로 가는 구 도로 양편에 28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길이 25∼30m의 대형분에서 길이 5∼10m의 소형분까지 다양한데 대형분은 방대형에 가까우며 소형분은 원형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일제식민지시대에 일부가 도굴되었는데 다량의 옥류(玉類)와 금제품이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그중 제6·14호분이 고분군 정비에 따른 복원기초 자료를 얻기 위해 1990년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제6호분에서는 4기의 독무덤(甕棺)과 후대의 민묘 2기, 그리고 구덩이 1개가 조사되었다. 매장주체 시설은 모두가 봉토 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지상식(地上式)으로 축조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장타원형이고, 봉분자락에는 도랑이 돌아가고 있었다. 제14호분은 생토를 일부 파고 하나의 독무덤을 안치한 후 봉토를 쌓은 단독장(單獨葬)으로 소형분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시종 와우리 옹관고분 형식과 거의 비슷하다. 2기의 모두 도랑이 확인되어 도랑은 영산강유역 독무덤 고분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밝혀졌다. 또한 토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독무덤이 노출되어 매장시설임이 밝혀졌다. 특히 토성 트랜치에서 확인된 독무덤은 전용독무덤(專用甕棺)의 주(主)옹관을 일상용기 토기 내부에 흙을 가득 채우고 서로 다른 2개체의 토기를 덧씌워 막고 있는 것으로 영산강유역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져 주목된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철제손칼(鐵刀子), 옥류로 매우 빈약하며, 축조연대는 거의 비슷하나 제6호분 3호 독무덤과 제14호분 1호 독무덤은 3세기후반, 제6호분 1호 및 2호 독무덤은 4세기전반, 4호 독무덤은 4세기후반 경으로 보았다. 1990년에 봉분 3기, 1993년 봉분 7기, 1995년에 1기의 봉분이 복원 정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