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함평이규행가옥(咸平李圭行家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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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군 나산면에 자리잡은 이 가옥은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충인(1526∼1597)이 지었다고 한다.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안채 건물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17∼18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구조를 이룬다. 기둥은 앞면과 오른쪽 부분에만 둥근기둥을 세우고, 그 외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집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전하는 커다란 동백나무와 모과나무 한 그루가 현재 집 주위에 남아 있다. 이 가옥은 300여 년 가까이 된 옛집이지만 기둥과 기와 등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원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구조를 이룬다. 기둥은 앞면과 오른쪽 부분에만 둥근기둥을 세우고, 그 외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집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전하는 커다란 동백나무와 모과나무 한 그루가 현재 집 주위에 남아 있다. 이 가옥은 300여 년 가까이 된 옛집이지만 기둥과 기와 등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 가옥은 현재 안채만 남아 있는데 건축연대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규행의 12대조인 이충인(1526∼1597년)이 30여세때에 지었다고 하나 이는 집에 내려온 말 일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안채 상량문에는 이미 퇴색되어 그 전문을 읽을 수 없으나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2…」라고 되어 있어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 사이에 건립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가옥은 300여 년 가까이 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기둥과 기와 등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 가옥은 본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훼철되고 오직 안채만이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집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전해오는 커다란 동백나무와 모과나무 한 그루가 현재 집 둘레에 남아 있다. 안채 전면으로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전개되는데 이곳에 본래 사랑채와 행랑채 그리고 문간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일자형 팔작기와 집으로 정면 7칸 전후좌우 툇집이다. 평면구성은 좌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뒷퇴를 포함한 2칸 대청, 그리고 건너방의 순서로 배열되었으며 부엌 앞쪽에 2개의 부엌방을 두었다.
기단은 자연석 바른층 쌓기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시멘트로 덮어져 있으며 주춧돌은 막돌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우측 퇴부분에만 원형기둥을 썼으며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대청의 중앙부분은 1고주 5량이며 방쪽은 2고주 5량 구조로 되어 있고 도리는 장혀로 받혀진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전면의 퇴보밑에는 머리쪽으로는 직선으로, 기둥 안쪽으로는 비스듬하게 잘린 보아지를 두었다.
안채 상량문에는 이미 퇴색되어 그 전문을 읽을 수 없으나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2…」라고 되어 있어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 사이에 건립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가옥은 300여 년 가까이 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기둥과 기와 등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 가옥은 본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훼철되고 오직 안채만이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집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전해오는 커다란 동백나무와 모과나무 한 그루가 현재 집 둘레에 남아 있다. 안채 전면으로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전개되는데 이곳에 본래 사랑채와 행랑채 그리고 문간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일자형 팔작기와 집으로 정면 7칸 전후좌우 툇집이다. 평면구성은 좌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뒷퇴를 포함한 2칸 대청, 그리고 건너방의 순서로 배열되었으며 부엌 앞쪽에 2개의 부엌방을 두었다.
기단은 자연석 바른층 쌓기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시멘트로 덮어져 있으며 주춧돌은 막돌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우측 퇴부분에만 원형기둥을 썼으며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대청의 중앙부분은 1고주 5량이며 방쪽은 2고주 5량 구조로 되어 있고 도리는 장혀로 받혀진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전면의 퇴보밑에는 머리쪽으로는 직선으로, 기둥 안쪽으로는 비스듬하게 잘린 보아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