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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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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대와 수많은 설화를 간직한 신비로운 산!

광산구 평동과 어룡동을 가르며 평동쪽에서 보면 평범한 뒷동산이요, 어룡동에서 보면 황룡강과 함께 제법 우람한 자태를 나타내 꼭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산, 앞의 어룡은 그토록 유명한데 강을 건너 수많은 골을 형성하며내리 뻗어 약간의 신비감마저 감도는 저산은 도대체 무얼까? 어룡쪽의 전설과 평동쪽 각각 다른 설화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이산은 어룡쪽의 용마바위 전설과 평동쪽의 후백제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 전설로 유명하다.

삼국시대를 전후하여 복룡산 자락 평동쪽 기슭은 광산지역의 중심이었다.


현재 용동마을 주변이 관동현이 자리잡고 있었고,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관동현감의 관사와 감옥이 평동공단 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그래서 용동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현재의 송정은 일제시대이후 송정역이 자리잡으면서 발전한 지역이지만 조선시대까지 만해도 광산지역의 중심은 용동이었다. 그래서 용동 사람들은 용동과 복룡산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평동의 용동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올라가다 보면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룡산 자락에 접어든다. 소나무 밭을 따라 난 등산로를 올라 이산의 중턱에 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평동의 들녘이 보인다.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은 나주의 금성산이 눈앞에 있다. 봉화불로 교신을 하던 시절에 나주의 금성산과 광산의 복룡산에는 여러개의 봉화대가 있었다. 지금은 무성한 풀로 뒤덮여 세월의 무성함만 느끼게 하지만 산정상에는 봉화대터가 남아 있다. 멀리 서북쪽을 보면 마치 흰 광목옷에 짚신을 신고 개나리 봇짐을 메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옛 서울 길 관문 희어재가 보인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전쟁 중에 만나 사랑을 키워오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간 그가 다시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죽어간 한여인이 애틋한 전설을 떠올리다 보면 희어재에 흰 소복차림의 한 여인의북풍에 옷자락 머리자락 휘날리며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잘 정비된 등산로, 악수터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정상으로 이르는 등성을 따라 몇 발짝 걸으니 희귀한 모양을 한 새가 눈앞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보금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듯 이쪽을 감시하며… 주봉에 가까워질수록 수풀은 더욱 우거지고 울울창창한 황룡강쪽 숲은 사람의 발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듯 싶었다. 가을의 정취와 함께 주봉을 돌아 다른 등산로로 내려오다보면 하늘을 덮은 뻑뻑한 시누대발 등산로가 색다른 느낌을준다. 약1시간 여 동안 그렇게 복룡산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다시 용동 마을로 돌아와 있다.

< 복룡산에 관한 설화 >

- 까마귀의원혼 -

고려태조 왕건에게 패한 후백제 견훤의 휘하에 원상이라는 한 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에게는 아사라는 애첩이 하나 있었는데, 장군의 열렬하고 극진한 사랑에도 그녀는 항상 우수에 찬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군은 늘 불만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어쩌지는 못하였다. 여인은 돌덩이처럼 차갑게 그저 장군의 요청에 굴종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군원상은 그 메아리 없는 짝사랑에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점장이에게 그 까닭을 알아보게 한즉, 그 여인에게는 사랑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원상장군에게 대적하는 지방민병의 수괴로활약하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 사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 그 여인에게 끼워준 옥가락지가 있었는데 그 원혼이 붙어 그녀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원상장군은 즉각 옥가락지를 그녀의 손에서 뽑아 버리고 싶었으나 그렇게 까지 하기는 싫었다.
 
 그후 세월이 흐르고 왕건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후백제의 국운이 기울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애첩 아사가 장군에게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생각에 망설이고 있으니 그녀는 전에 없이 방긋방긋 웃으며 겨울이 되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고 하며 연로한 부모와 죽은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내아이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장군은 사랑하는 여인의 간청을 끝내 물리칠 수 없어 "그럼 네 손에 있는 옥가락지를 나에게 맡기고 갔다 오라"고 하니 그녀는 서슴없이 옥가락지를 뽑아 장군에게 건네주면서 "제가 돌아오면 돌려 주셔야 하옵니다"하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아사는 황룡강 물가에 성엣장처럼 얇은 얼음이 깔리기 시작한 어느 초 겨울날 돌아왔다. "고향에 무슨 변고는 없었는가"하고 장군이 정겹게 묻자 그녀는 "저에게는 전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내아이가 하나 있는데 제가 떠나올 때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고 말하고 두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내가 그 아이로부터 너를 빼앗은 셈이 되었구나"하자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중병을 앓고 있는데 지금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죽으면 까마귀가 되겠다 하더군요" "까마귀가 되왜 하필… "저는 장군님과 약속을 지켰으니 가락지를 돌려 주세요"라고 말하자 장군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더 좋은 것으로 사준다고 하였다. 힘있는 자는 언제나 약자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아사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그 뒤로 후백제의 견훤군은 왕건군사에게 패하여 복룡산 앞 황량한 들판에는 시체들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가운데 단 하나 숨이 붙어 움직이는 인간이 있었는데 그는 온몸이 창으로 찔리고도 호주머니 속에서 옥가락지를 꺼내 석양에 비춰보고 있었다. 원상장군이었다. 그때 어딘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리더니 새까만 그림자가 그 주위를 뒤덮었다. 널려있는 시체들에 달려들어 눈깔부터 쪼아먹던 까마귀는 그 수가 점차 늘어만 갔다. 원상장군은 겁이나서 몸을 버둥거렸지만 손발이 말을 들지 않았다. 그때 아까부터 고목 위에 앉아 그만을 노려보고 있던 까마귀 한 마리가 쏜살같이 그에게 달려들어 장군의 한눈을 쪼아 문드려 버렸다. 그리고 또 남은 한 눈도… 그 때 장군의 귀에는 아사의 절규가 들려왔다. "그래요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저에게서 빼앗은 건 당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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