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국보/보물 > 보물 | 흥국사대웅전후불탱(興國寺大雄殿後佛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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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탱화로, 비단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4.27m, 세로 5.07m이다. 탱화는 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탱화는 화면 중앙에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앞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이 배치되었고, 그 옆으로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따르는 무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석가여래상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쳤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모습이다.
채색은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졌는데, 머리광배의 녹색은 지나치게 광택이 있어 은은하고 밝은 맛이 줄어든다. 그러나 꽃무늬나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결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숙종 19년(1693)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승려화가가 그린 이 탱화는 원만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의 조화로 17세기 후반기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 탱화는 화면 중앙에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앞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이 배치되었고, 그 옆으로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따르는 무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석가여래상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쳤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모습이다.
채색은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졌는데, 머리광배의 녹색은 지나치게 광택이 있어 은은하고 밝은 맛이 줄어든다. 그러나 꽃무늬나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결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숙종 19년(1693)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승려화가가 그린 이 탱화는 원만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의 조화로 17세기 후반기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한국의 불화는 삼국(三國)시대 것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것들만이 남아 있는데, 고려시대 것은 대부분(2백여 점) 일본에 있고, 조선시대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것만 남아 있다. 그것도 조선시대 숙종(肅宗)(1675∼1720) 무렵부터 제작된 것이 절대다수에 속한다. 흥국사(興國寺)의 이 탱화도 영산회(靈山會)를 마친 후 주상3전하(主上三殿下)의 만세수(萬歲壽)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하여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스님(화승(畵僧))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다. 대족자(大簇子)로 되어 있는 이 탱화는 채색이 두텁고 화려하며 전통불화 양식을 따르고 있다. 상태는 보통인 편이나 녹색 계통의 탈락이 심하고 광배(光背) 부분은 양쪽을 훗날 보충한 흔적이 보인다. 비단에 짙은 물감을 써 그린 견본진채화(絹本眞彩畵)인 이 탱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의 수미단 위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중심으로 여섯 보살(菩薩)과 사천왕(四天王)이 앞쪽에서 협시호위(脇侍護衛)하고 있으며, 그 뒤에 6대 제자와 여섯 과거불(過去佛)이 있다. 또 그 위에는 동자(童子)와 신장(神將)이 있으며, 흑천서운(黑天瑞雲) 사이에는 작게 그려진 여러 신들이 있다. 탱화의 둘레에는 백색의 당초문(唐草文)이 돌려지고, 그 밑에 화기(畵記)가 쓰여 있다. 화기(畵記)는 「강희삼십이년계유사월일(康熙三十二年癸酉四月日) 영축산흥국사영산회필(靈鷲山興國寺靈山會畢) 공안우태위주상삼전하만세수만세국태민안(功安于泰爲主上三殿下萬歲壽萬歲國泰民安) 법륜상전(法輪常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