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영암신연리고분군(靈岩新燕里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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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리의 뒷모실 마을 뒷쪽에 남북으로 활처럼 휘어져 뻗어내린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무덤들이다.
모두 15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데, 9호 무덤의 봉분 형태가 피라미드형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을 둘렀다. 봉분 안에는 널무덤(토광묘) 3기와 독무덤(옹관묘) 4기가 확인되었는데, 독무덤은 이음식, 합개식, 단옹식이 사용되고 있다. 유물은 토기류, 철조각, 옥종류가 수습되었고, 봉분 바닥에서는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어진,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유물과 무덤 축조방법으로 보아, 이 무덤은 4세기 전반에서 후반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신연리무덤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시기가 다른 취락과 무덤이 겹쳐 조사됨으로써, 무덤축조에 따른 축조집단의 사상적 배경을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모두 15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데, 9호 무덤의 봉분 형태가 피라미드형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을 둘렀다. 봉분 안에는 널무덤(토광묘) 3기와 독무덤(옹관묘) 4기가 확인되었는데, 독무덤은 이음식, 합개식, 단옹식이 사용되고 있다. 유물은 토기류, 철조각, 옥종류가 수습되었고, 봉분 바닥에서는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어진,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유물과 무덤 축조방법으로 보아, 이 무덤은 4세기 전반에서 후반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신연리무덤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시기가 다른 취락과 무덤이 겹쳐 조사됨으로써, 무덤축조에 따른 축조집단의 사상적 배경을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시종면(始終面) 신연리(新燕里) 일대에는 17기 이상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뒷모실에 길이 10∼19m, 높이 1∼3m의 장방형, 타원형 형태의 고분 15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뒷모실 마을 뒤쪽에 남북으로 활처럼 휘어져 뻗어내린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치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15기의 고분중 제9호분이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으며, 1995년에 제8·11·14·15호분, 1996년에 제9·10·13호분에 대한 시굴조사가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모두 고분군의 복원정비를 위한 기초자료의 획득에 있었다. 제9호분은 봉분의 형태가 방대형으로 봉분자락에 도랑을 돌렸다. 봉분내에서는 널무덤(土壙墓) 3기, 독무덤(甕棺墓) 4기의 유구가 확인되어 널무덤과 독무덤이 공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봉분의 자락으로는 도랑을 파 돌렸는데, 모서리 부분보다 가운데를 더 깊게 팠으며, 도랑을 파면서 나온 흙을 성토(盛土)하는데 이용함으로써 작은 노력으로 봉분의 고대화(高大化)를 꾀한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 고분도 시종 만수리 제4호분처럼 토광묘가 봉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주매장시설임을 말해 주고 있다. 독무덤은 전용옹관을 사용하여 합구식(合口式), 합개식(合蓋式), 단옹식(單甕式)이 사용되고 있다. 유물은 토기류, 철편, 옥류(玉類)이며 축조방법과 유물을 통하여 연대는 4세기 전반에서 후반으로 보았다. 그리고 봉분 밑바닥에서는 고분이 축조되기 전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동일한 장소에서 취락과 무덤유구가 겹쳐서 조사됨으로써 성격을 달리하는 이들 유구의 선후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줌은 물론이고 고분 축조에 따른 축조집단의 사상적 측면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실마리의 하나를 제공해 주었다. 시굴조사된 8기의 고분은 장방형 또는 장방형에 가까운 사다리꼴의 평면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두 도랑이 확인되었다. 신연리 고분은 제9호분이 1991년에 봉분이 복원되었고, 1995년에 3기, 1996년에 4기의 봉분이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