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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는 섬 전체가 모래언덕으로 형성되어있고, 갯바람이 심하게 불고 나면 들과 산조차도 모래로 뒤덮여버리고 만다. 섬 곳곳에는 섬사람들의 '물치'또는 '모래치'라 부르는 물이 고인 큰 웅덩이가 있는데, 희안하게도 모래가 머금고 있던 물이 한 곳으로 쏟아져 내려서 만들어진 '오아시스'라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임자도의 지형은 중동에서나 보는 사막의 지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고 하며, 그래서 뭇사람들은 임자도를 한국의 유일한 사막이라 부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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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해수욕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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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서쪽에 자리잡은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이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백사장은 장장 12㎞에 달하며 폭은 300m가 넘는다. 해수욕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려면 걸어서는 1시간 20분, 자전거로도 30분이나 걸리는 광활한 백사장이다. 넓은 백사장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 또한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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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고인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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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리 부락 김기지 씨 집 뒷터에 지석묘 3기가 있다. 일명 개구리돌이라고 불리는 상석은 6.25전쟁 당시에 깨졌다고 하는데 흔적을 확인할 수가 없다. 상석 크기는 장축 400cm, 단축 250cm, 두께 100cm 이고 타원형으로 이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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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성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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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흑암리 대둔산(280m) 정상에 위치한 퇴뫼식 산성이다. 대둔산성은 대체로 조선 숙종 37년(1711년) 임자진이 설진될 당시에 초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둔산성의 서쪽으로 재원도, 동쪽으로는 지도, 남쪽으로는 바다, 북동쪽으로는 진리(진도)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대둔산정에서는 이들 섬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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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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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지방의 유림 인사들은 외세 침탈등 국가적 위기의 해결 방안으로 위기정척사를 주장하였다. 특히, 임자도의 유림들은 화산 산록의 바위에 위정척사라는 명문을 새겨 강렬한 척사 의지를 천명하고 당시 임자의 대표적 유림 인사들이었던 김두후, 이학재, 임행재, 박종현은 일제 시대였던 1916년 화산 산록에 단을 설치하였다. 당시 경향에서 크게 활약하였던 화서 이항로, 노사 기정진, 중암 김평묵, 송사 기우만 등 위정척사 사상의 지도자들을 추앙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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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생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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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은 1851년 조정의 예송논쟁에 개입하였다가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유배조치 되었다. 그는 유배지 오두막집에 ‘만구음관(萬鷗?館)'이라는 편액을붙이고 그 속에서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당호가 있는 그의 그림 19점 중 8점이 이 때 나올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이 있었고 묵죽법(墨竹法)과 괴석도(怪石圖) 그림에 일가를 이룸은 물론 중국 송나라의 대가 ‘곽희'가 만든 산수화 개념조차 수정하여 ‘조선 산수화' 특유의 감각미를 강조하였다. 유배 시기 조희룡의 기량은 이론의 정립과 기량의 완숙으로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