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국보/보물 > 보물 | 금탑사괘불탱(金塔寺掛佛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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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과 주요 협시보살을 그린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는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금탑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506㎝, 폭 648㎝로,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삼세불은 화면을 가로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은 원만한 얼굴에 귀·눈·입·코 등이 작게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옆으로 퍼져 있으며,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어깨는 각이 지게 표현되어 있으며, 발목에는 치견(侈絹)이 장식되어 있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시기의 것이다.
조선 정조 2년(1778년)에 비현과 쾌윤이 함께 그린 이 그림은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장식 등에서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금탑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506㎝, 폭 648㎝로,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삼세불은 화면을 가로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은 원만한 얼굴에 귀·눈·입·코 등이 작게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옆으로 퍼져 있으며,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어깨는 각이 지게 표현되어 있으며, 발목에는 치견(侈絹)이 장식되어 있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시기의 것이다.
조선 정조 2년(1778년)에 비현과 쾌윤이 함께 그린 이 그림은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장식 등에서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금탑사괘불탱(길이506cm×폭648cm)
이 괘불은 비현(丕賢)과 쾌윤(快允)이 1778년에 함께 그린 것으로,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三世佛)을 표현한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이다. 삼세불은 화면을 횡으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태는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인 원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侈絹)장식 등을 보여준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시기의 것이다.
이 괘불은 비현(丕賢)과 쾌윤(快允)이 1778년에 함께 그린 것으로,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三世佛)을 표현한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이다. 삼세불은 화면을 횡으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태는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인 원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侈絹)장식 등을 보여준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시기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