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함평척화비(咸平斥和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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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끌면서,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더욱 강력히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비의 규모나 크기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그 내용만은 똑같이 쓰도록 하였다.
함평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에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침략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해야하는데,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과 같다. 이를 우리 만세 자손들에게 일깨운다.”라는 강한 어투의 경고문구를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일제히 세운 척화비는 이후 외국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이 비는 몇 안되는 척화비들 가운데 하나로 그 크기가 가장 크며, 전라남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화기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함평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에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침략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해야하는데,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과 같다. 이를 우리 만세 자손들에게 일깨운다.”라는 강한 어투의 경고문구를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일제히 세운 척화비는 이후 외국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이 비는 몇 안되는 척화비들 가운데 하나로 그 크기가 가장 크며, 전라남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화기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