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 문화재/민속자료 > 문화재 | 영암문창집가옥(靈岩文昶集家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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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해군 5년(1613) 애송당 문익현이 지어 14대째 내려오고 있다. 현 소유자인 문창집의 5대조 문병호가 고쳐 지었으며, 1968년에는 문간채를 새로 지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에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문간채는 앞면 3칸 규모이며 문은 솟을대문 형식으로 꾸몄다.
350년 이상된 건물로 일부 수리가 있었지만, 대체로 원형을 잘 보존한 이 지방 전통 가옥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에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문간채는 앞면 3칸 규모이며 문은 솟을대문 형식으로 꾸몄다.
350년 이상된 건물로 일부 수리가 있었지만, 대체로 원형을 잘 보존한 이 지방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애송당 문익현이 광해군 5년(1613)에 건립하였다. 이후 현 소유자 문창집의 5대 조인 문병효(정조 을묘생 : 1795년)가 대중수(大重修)를 한 후 현재 14대째 내려오고 있다. 건물은 현재 안채와 사랑채「안채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후 여러 곳을 새로 바꾸었으며 기와도 한와(韓瓦)에서 시멘트 기와로 교체하였음」, 그리고 1968년도에 새로 건축한 정면 3칸의 문간채가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장암정을 뒤로하여 골목길을 조금 지나면 평탄한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향으로 건립된 문간채를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안채가 건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본래 문간채는 안채 전면에 있었으나 60여년 전에 허물어져 현재의 자리에 새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사랑채는 안채 전면 좌측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랑채 옆에 축조되었던 연못이 최근에 메워져 아쉬움이 남는다. 본 가옥의 안채 뒷면에는 대나무와 각종 나무들로 자연 동산이 잘 형성되어 있다.
안채는 팔작지붕으로 된 정면 5칸에 측면은 전·후로 퇴를 둔 기와집이다. 평면형태는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뒷면에는 마루로 된 안광이 꾸며져 있으며 그 앞쪽으로는 머리방이 하나 있다. 오른쪽으로는 본래 안방과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최근에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고 그 뒷면에 부엌을 꾸몄다.
사랑채는 정면 5칸에 안채와 같이 전후로 퇴를 둔 팔작집이고 문간채는 1960년대에 새로 건립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이 집은 350년 이상된 건물로 일부 바꾼 사실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이 지방의 전통적인 가옥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장암정을 뒤로하여 골목길을 조금 지나면 평탄한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향으로 건립된 문간채를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안채가 건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본래 문간채는 안채 전면에 있었으나 60여년 전에 허물어져 현재의 자리에 새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사랑채는 안채 전면 좌측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랑채 옆에 축조되었던 연못이 최근에 메워져 아쉬움이 남는다. 본 가옥의 안채 뒷면에는 대나무와 각종 나무들로 자연 동산이 잘 형성되어 있다.
안채는 팔작지붕으로 된 정면 5칸에 측면은 전·후로 퇴를 둔 기와집이다. 평면형태는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뒷면에는 마루로 된 안광이 꾸며져 있으며 그 앞쪽으로는 머리방이 하나 있다. 오른쪽으로는 본래 안방과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최근에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고 그 뒷면에 부엌을 꾸몄다.
사랑채는 정면 5칸에 안채와 같이 전후로 퇴를 둔 팔작집이고 문간채는 1960년대에 새로 건립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이 집은 350년 이상된 건물로 일부 바꾼 사실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이 지방의 전통적인 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