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레저 > 자연휴양 > 기타 | 화순 적벽(和順 赤壁) 기념물 제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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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 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동목댐 상류에 있는 장학리 적벽(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청량리, 물염리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적벽은 퇴적암의 일종인 점판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적벽의 수면 높이는 60m에서 80m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중이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노래했던 적벽부에서 이름을 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있는 적벽과 방불하여 이곳을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많은 풍류묵객들이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다고 전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깍아 세운듯한 수백척단애절벽의 절경에 젖어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도 이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쳤다.
노루목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웅장함 그리고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인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물염적벽은 규모나 풍치면에서 노루목 적벽에 미치치 못하지만 그 건너편 언덕 위에 송정순이 1550년대에 건립한 물염정이 있어 위락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보산적벽은 노루목에서 서쪽으로 600여m 거리에 있는 보산리 북쪽 계류가 형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으나 수량이 풍부했다. 청랑적벽은 창랑리에 있는데 높이 40여m에 길이가 100여m가량 이어진 절벽군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 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적벽은 동복댐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며 물염적벽과 청랑적벽만 관람할 수 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중이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노래했던 적벽부에서 이름을 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있는 적벽과 방불하여 이곳을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많은 풍류묵객들이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다고 전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깍아 세운듯한 수백척단애절벽의 절경에 젖어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도 이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쳤다.
노루목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웅장함 그리고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인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물염적벽은 규모나 풍치면에서 노루목 적벽에 미치치 못하지만 그 건너편 언덕 위에 송정순이 1550년대에 건립한 물염정이 있어 위락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보산적벽은 노루목에서 서쪽으로 600여m 거리에 있는 보산리 북쪽 계류가 형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으나 수량이 풍부했다. 청랑적벽은 창랑리에 있는데 높이 40여m에 길이가 100여m가량 이어진 절벽군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 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적벽은 동복댐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며 물염적벽과 청랑적벽만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