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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우리나라 서남부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목포로 부터 59.7km떨어져 있다.
연화부수(蓮花浮水). 물 위에 연꽃이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하의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유인도 9개, 무인도 47개로 구성되어 있다. 야산으로 된 지형은 농업용수와 식수에 어려움이 많고 천일염과 수산양식으로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신도와 대야도는 모래밭과 송림이 좋아 천혜의 해수욕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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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 대통령생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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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인동초 '김대중'이라는 거목을 낳은 고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목포북초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총면적 288m의 생가는 헐리고 마늘밭으로 변하여 생가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판만이 서 있었는데 종친들이 중심이 되어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1999년 9월 60여 년만에 원형대로 완전 복원하였다. 복원된 생가는 6칸으로 안채와 창고 1동, 화장실 1동 등의 부속채와 헛간등이다. 생가의 목재를 이용하여 집을 짓고 살던 어은리 마을 주민의 집을 다시 사들여 해체한 다음 기둥 등 주요 목재를 이용하여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신안군은 화장실과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춰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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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기암절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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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는 섬 전체가 경관이 뛰어나고 울창한 송림과 산림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해안에는 길이 800m의 백사장이 있어 여름 피서지로는 제격이다. 또한 20여년 전부터 방목해 놓은 흑염소 천여 마리가 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야생초를 먹고 자라 약효가 뛰어나다. 마을 주민에게 예약하면 흑염소 바베큐도 맛볼 수 있다. 신도의 특산물로는 돌미역, 꽃게 등이 있으며, 여름철에는 마을에서 직접 돌미역을 구입할 수 있고 신도 꽃게는 전국에서도 맛이 제일 좋다고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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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3도 토지항쟁기념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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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1623년 조선 인조때부터 1950년대까지 3백년 넘게 장구한 농지탈환 운동이벌어졌던 역사적인 섬. 조선조 선조 때 맏딸 정명공주의 불치병을 치료한 홍계원을 사위로 삼고 하의3도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를 그에게 무토사패로 준다. 즉 농민들은 세금을 호조에게 내지않고 홍씨 가문에 바쳐 왔다. 홍씨 가문의 결세징수권이 만료되었으나 계속 받아가니 섬사람들은 홍씨 가문과 호조에 일토양세(一土兩稅)를 바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1723년 섬사람들은 경조제소를 냈고, 1908년 경성공소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그 사이 토지 소유권은 일본인 토쿠다에게 넘어 갔다. 결국 하의 삼도 농민은 농민회를 결성하여 항쟁을 계속하게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으로 귀속되고 말았다. 다시 농민들은 농민 토지 탈환 운동을 하게 되었고,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 국회에서 무상환원을 결의했으나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57년에 드디어 유상상환으로 하의도 주민들의 소유가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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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얼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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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면 서부일주도로(임도)에 위치한 모래구미해수욕장은 길이 100m, 폭 80m의 소규모해수욕장으로 리아스식 해안과 일몰이 아름다워 가족단위 관광객이 매년 증 가하고 있다. 주변해안에는 자연산 전복, 톳, 미역이 자생하고 있으며 돔, 우럭, 농어등의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변에 사람의 옆얼굴과 같이 생긴 얼굴바위(대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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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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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면만의 독특한 화염제조법을 전승보전하면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화염제조 건물과 염판등을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동쪽으로 후광 큰펄이라 불리는 개펄이 발달되어 있고, 인근 주변에는 염전이 있어 화염 생산과정과 현재의 천일염 생산과정을 동시에 보고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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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남도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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